공덕동의 고층 빌딩 숲은 점심이 되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바쁜 직장인들의 빠른 걸음걸이로 가득 찬 현대적인 회색빛 거대함을 뿜어낸다. 모니터 앞의 복잡한 보고서 뭉치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팽팽했던 마음의 긴장은 저녁이 찾아와 빌딩들의 사무실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하면, 한결 아늑하고 부드러운 이웃들의 온기가 감도는 밤거리로 서서히 변화해 가기 마련이다. 오랜 친구들과 마주 앉아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비운 우리는 자연스레 학창 시절 자주 불렀던 정겨운 멜로디에 기대어 기분을 치유할 수 있는 소담한 개인 부스를 찾아 나섰다.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은 화려하고 요란한 유흥가가 아니라, 오롯이 우리들의 서툰 목소리조차 따뜻하고 편안하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조용한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다. 굳이 잘 쓰인 전문 후기글들이 가득 찬 포털 상업 광고 포스트나 공덕 노래방 내돈내산 같은 복잡한 타이틀들을 밤새 눈 아프게 비교하려 들지 않더라도, 주변 지리가 편리한 건물 지하 모퉁이에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한 매장 하나만 정직하게 골라 예약해도 훌륭한 쉼터를 찾아낼 수 있다. 화려하고 번잡한 간판들 틈바구니에서 모던하게 마감된 세련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갈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와 깨끗하게 정돈된 실내 공기가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편안한 긴장 완화를 선사한다. 마이크 청결 소독도 아주 잘 되어 있어 안심하고 맘껏 즐기기에 흠잡을 곳이 없다.
스쳐 흘러가는 멜로디 속에 아로새긴 인생의 쉼표친구들의 낯선 노래 부르는 모습 속에서 인간적이고 호탕한 면모들을 발견하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큰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그 찰나의 경험은 참 소중하다. 거창한 사회적 가면을 잠시 룸 입구에 내려두고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고 나면, 가슴 깊숙한 곳에 굳어 있던 묵은 스트레스와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을 실감한다. 진정한 휴식이란 요란한 겉포장에 기댈 필요 없이, 내 뚝심을 굳건히 지키며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조화로운 온기 속에서 멜로디 한 자락을 온전히 주고받는 행복에 집중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 공덕 밤길 위로 엷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가슴속 깊이 든든하게 채워진 온기 덕분인지 전혀 차갑지 않게 느껴졌다. 나만의 소박하고 정갈한 쉼표를 가슴속 서랍에 귀중하게 간직하고 다가올 내일 아침을 기분 좋게 준비해 본다.